남아 있는 나날 (가즈오 이시구로)
남아 있는 나날 (가즈오 이시구로)
아마도 제목이 낯선 사람들이 많으리라. 나도 며칠 전에 선물받기 전에는 2017년 노벨문학상 수상자의 작품인 것을 몰랐으니…
주인공은 1930년대부터 영국의 한 저명한 주택의 집사다. 그는 집사로서의 전문성을 가지고 역할을 충실하게 수행하며 살아왔다. 아버지의 임종에도, 사랑하는 여인의 고백에도 자기 역할에만 충실하며 그에 대한 의미를 찾아왔다. 그리고, 저택의 주인이 비공식적이지만 중요한 여러 사교모임을 통하여 국제정세에 영향을 미쳤으며, 그 모임을 차질없이 준비하고 진행함으로써 본인도 그에 어느 정도 기여를 했다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
오랜 시간이 지나 그 주인마저 바뀌고, 예전 그 여인을 찾아가는 며칠 간의 여행에서 본인의 삶을 돌아보게 된다. 순수한 의도를 가지고 여러 역할을 했던 저택 주인은 결과적으로는 히틀러에게 부역자가 되었고, 애써 본인이 외면했던 여인은 다른 남자를 만나 행복한 노후를 준비하고 있다. 그는 짧은 여행에서 돌아오는 중 만난 어느 노인에게 들은 '저녁은 하루 중에 가장 좋은 때'라는 말을 되새기며 다시 자신의 위치로 돌아가게 된다.
내가 맡은 일에 대한 책임감이 강한 편이지만 그에 필요한 기본적인 역할과 결과만을 만들어 내고, 그 이상의 열정은 부족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마치 본인의 역할만을 충실하고 그 이상의 의미를 애써 외면했던 주인공처럼…
평균 85년을 산다고 하면 나는 이제 한창 활동이 왕성하고 뜨거운 태양이 내리쬐는 2시쯤이다. 하루 중 가장 좋은 저녁을 즐기기 위해서 어떠한 오후를 보내야 할 지 또 한번 고민해 보는 시간이다.
(2018.07.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