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폐 권력과 민주주의 (최배근)
일본은 지난 30년간 제조업(산업 혁신 실패), 부동산(자산 시장의 거품), 건설경기 부양(금융 완화, 돈풀기)이라는 과거에 갖혀 있다. 우리 나라도 비슷하게 미래 먹거리 없이, 부동산이라는 자산에 모든 자원이 몰려들고, 임금 격차가 커지고 있다. 기득권에 의해 미래의 발목까지 잡혀 있는 현실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정치 리더십‘이 중요하다. 왜 그런지 화폐, 중앙 은행, 정부과의 관계를 중심으로 살펴본다.
우선 자본주의의 중심을 이루고 있는 화폐와 중앙은행, 이를 관리하는 정부와의 관계를 살펴본다. 실물(금)을 보증수단을 하던 태환화폐는 정부가 보증하는 불환화폐(신용화폐)로 바꾸고, 화폐의 발행 및 관리를 중앙은행에 맡긴다. 이로써 은행은 스스로의 한도를 벗어날 수 있는 여건이 만들졌다.
정부도 중앙은행에게 돈을 빌린다. 그런데 이 빚은 일반인과는 차이가 있다. 부채 원금을 갚지 않고 이자만 지급해도 유지될 수 있다. 왜냐고? 사람은 죽지만, 국가는 망하지 않는 한 계속 존재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자 지급이 가능한 수준으로 관리돼야 하므로 부채금액도 중요하지만 이자율이 더욱 중요하다. 정부 부채가 늘었다고 해서 무조건 호들갑 떨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것은 모두 정부는 조세권이라는 경제력을 가지고 보증하기 때문에 가능하다. 결국 현재의 화폐제도와 은행은 국민 세금으로 보증되고 있는 것이다.
현대 사회는 '1인1표'의 민주주의와 '1원1표'의 시장 경제가 서로 공진화하면서 발전할 수 있었다. 만약 돈의 힘에 의한 시장 경제만 남는다면 불평등 심화로 인한 사회 불안으로 지속되기 어려워진다.
우리나라는 김영삼 문민정부 때 OECD가입을 위한 자본거래 규제 폐지와 금융시장 자유화로 외국자본 유입이 급증한다. 그 결과 97년 외환 위기를 맞아 IMF 구제금융을 받게 되었다. 이후 공공금융은 무너지고, 각자도생, 노후 파산, 지방 소멸, 인구 소멸 등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 심각한 상황을 멈추기 위한 한 방편으로 공공금융의 복원이 필요하다. 국민 세금으로 보증하는 화폐와 은행제도에서 일반 국민도 최소한의 신용 권리를 이용할 수 있게 해야 한다. 예를 들어 천만원을 신용1등급의 이자로 10년 만기로 빌려주고, 이자 연체만 없다면 다시 10년을 연장해주는 제도를 적용하는 것이다. 이런 제도는 사회 안전망 확충에도 기여한다.
또한 외환 위기 이후 소득 증가보다 자산 증가가 훨씬 커졌다. 특히 우리나라는 주식 비중이 큰 미국과 달리 부동산 자산의 비중이 크다. 21년 기준 임금 노동자의 절반 이상은 소득은 월 250만원 이하다. 최저임금은 182만원이므로 상당히 많은 수가 최저 임금보다 못 벌고 있다. 대기업/중소기업, 정규직/비정규직, 임금노동자/자영업자 간의 소득격차도 크다. 반면, 지난 20년 동안 소득/기업 부가가치생산보다 최소 10배(비교대상에 따라 30배)가 넘게 부동산 자산이 증가했다. 벼락거지라는 용어까지 나온 까닭이다. 이런 상황에서 서울에서 보통의 임금 노동자가 월급만으로 집을 사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는 사이 우리 나라는 부동산 카르텔 공화국이 되었다. 그 근간에는 재벌 건설사와 자본의 부동산 금융이 있다. 부실한 건설사를 지원해 주고, 담보 대출 등으로 부동산 구매를 부추기고 있다. 부동산 가치는 이렇게 유동성와 가계부채로 겨우 유지되고 있으나 오래 지속될 수는 없다. 1990년대 일본보다 더 심각한 상황이라는 것이 저자의 판단이다.
정치는 이런 공공자본을 언제 어느 곳에 어떤 우선순위로 사용할 것인지를 결정하는 것이다. 우리나라 공공자본의 배분을 결정하는 곳을 기재부이다. 기재부는 국가발전전략, 예산, 화폐와 금융, 외환, 세금, 경제 정책 결정 등 엄청난 권한을 가지고 있다. 문제는 이 기재부를 중심으로 한 경제 관료(모피아)들이 진보/보수 정권 관계없이 주요 요직을 차지하면서 자본의 하수인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기본소득이나 공공금융을 기대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이 책은 23년까지의 여러 통계를 포함한 자료를 기준으로 현재 우리 나라가 얼마나 위기 상황인지를 설명하고 있다. 한국 경제를 살리는 현실적 방법으로 사회소득강화(기본소득 또는 전국민 지역화폐지급 등)와 공공금용 복원 등으로 내수 경제를 활성화시키고, 새로운 사업 등을 추진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 줘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정치이다. 결국 민주주의와 자본주의는 함께 가야하는 두 개의 바퀴인 것이다.
저자는 얘기한다.
"국민은 "무엇으로 먹고 살아야 하는가?"라고 질문하는 대신 소득과 금융에 대한 자신의 권리를 당당하게 요구해야만 한다."
시장 경제와 자본의 논리에 길들여져 어떤 것이 우리의 권리인지도 잘 모르고 살았다. 우리 나라의 경제 현실을 다시 한번 들여다 보고, 우리가 왜 정치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지 생각할 수 있는 책이다. 꼭 한번 읽어보기를 권한다.
(2024.0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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