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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별인사 (김영하)

by 당근영근 2023. 11. 21.

작별인사 (김영하)

 

내가 좋아하는 책 중에 마크 롤랜즈의 ‘SF철학’이 있다. 스타워즈 다스베이다의 가면 사진이 크게 있는 검은 색 표지가 인상적인데 절판되었다. 요즘은 ‘우주의 끝에서 철학하기’라는 영어 원제에 가까운 제목으로 표지도 바뀌어 다시 나왔다.

이 책을 좋아하는 이유는 그 전부터 SF를 좋아했는데, 그런 SF가 많은 철학적 상상력을 깊게 만들어 준다는 것을 이 책을 읽고 좀더 명확하게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얼마 전 김영하 작가가 신작 소설을 냈다. 대부분 현재나 가까운 과거 이야기를 쓰던 작가가 이번에 SF적인 소설을 썼다. 가까운 미래, 통일된 한국 평양에 위치한 인공지능 연구소에 근무하는 최박사의 아들 철이는 어느 날 길에서 갑자기 무허가 안드로이드라고 붙잡혀 수용소에 갇히게 된다. 자신이 인간으로만 알았던 철이는 그 이후로 복제인간 선이, 안드로이드 민이와 함께 여러 일을 겪으며 본인의 정체성을 깨달게 된다.

 

SF적이라고 말한 것은, 인공지능, 휴머노이드, 플라잉캡슐 등 SF를 차용하고 있지만 시종일관 삶과 죽음에 대해, 그리고 인간이란 무엇인지를 계속적으로 질문하는 소설이기 때문이다. 필멸하는 자아와 영생하는 공통의식(자가가 없는) 중 어느 하나를 선택한다면 어떤 것을 선택하겠는가? 작가는 주인공의 선택을 통해 이야기가 있는 의식은 인간이든 기계이든 같은 존재이며, 누구든 자기의 이야기는 끝이 나야 한다고 말한다. 항상 ‘이야기’를 강조하는 작가의 생각이 반영된 소설인 것 같다.

 

무거운 주제같지만, 소설은 간결한 문체와 복잡하지 않은 이야기 전개로 쉽게 읽혀진다. 다만, 그 주제를 어느 만큼 느끼냐에 따라 무게감이 다를 뿐일 것이다. 꼭 한번 읽어보길 권하고 싶은 책이다.

 

“민이 네가 인간이든 기계이든 그건 중요하지 않아. 수억 년간 잠들어 있던 우주의 먼지가 어쩌다 잠시 특별한 방식으로 결합해 의식을 얻게 되었고, 이 우주와 자신의 기원을 의식하게 된 거야. 우리가 의식을 가지고 살아가는 이 잠깐을 이렇게 허투로 보낼 수는 없어.”

 

“내가 누구이며 어떤 존재인지 더 이상 묻지 않아도 되는 삶. 자아라는 것이 사라진 삶. 그것이 지금 맞이하려는 죽음과 무엇이 다를까?” (주인공 철이가 기계지능에 통합되어 자아가 사라지는 것과 죽음 중에 선택하는 순간)

 

(2022.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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