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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약국의 딸들 (박경리)

by 당근영근 2023. 11. 27.

"통영은 다도해 부근에 있는 조촐한 어항이다. 부산과 여수 사이를 내왕하는 항로의 중간지점으로서 그 고장의 젊은이들은 '조선의 나폴리'라 한다."

 

박경리 소설 '김약국의 딸들'의 첫 구절이다. 내가 98년 처음 여수에 갔을 때 바다 경치들이 좋아 '여수는 마치 한국의 나폴리같다'라는 말을 많이 했었다. 난 아직도 나폴리를 가 본 적은 없지만 아름다운 항구도시의 상징처럼 생각했다. 그런데 그 표현이 어쩌면 이 소설에서 부터 시작된 것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이 소설은 1962년 작품임)

 

통영이 배경인 이 소설은 작가의 대표작이 토지이고, 토지의 주요 배경 중 하나가 통영이어서 자연스럽게 토지와 비교된다.

 

우선 김약국에 나오는 여러 인물에게서 '토지'에 나오는 인물들이 연상된다. 고결하고 결벽증인 듯한 김약국(가게 이름이 아니라 약국을 운영하던 주인공을 부르는 별칭이다)은 용이를, 물질적 부에 집착하는 용숙은 임이네를, 소목장이 중구 영감은 곱사등이 소목장이 조병수를, 용빈은 지식층인 명희와 그 친구를...

그리고 토지에 비해 빠른 이야기 전개가 이루어진다. 토지을 읽고 난 직후라 장편소설도 대하소설 앞에서는 그냥 짧은 단편처럼 느껴진 것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일제 강점기라는 비슷한 시대적 배경임에도 김약국은 사회적 갈등보다는 한 집안의 이야기에 집중한다. 아마도 개인, 집안, 사회로 이야기가 넓혀져 가면서 토지라는 대작이 나올 수 있었던 게 아닐까.

 

소설은 통영의 갑부였던 김약국과 그 다섯 딸이 여러 사건들로 인하여 몰락해 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김약국 본인도 그렇고 딸 하나하나를 봐도 비록 미움을 받을 수는 있어도 그렇게 악인으로 생각될 만한 사람은 없다. 하지만, 개인적 문제도 있었지만 여러 상황과 악연들이 겹치면서 한 집안이 처참하게 무너진다. 어찌보면 개인으로는 어쩌지 못 하는 답답함이 느껴진다. 둘째 용빈과 막내 용혜가 모든 것을 내려 놓고 서울로 떠나는 모습이 마지막까지 희망을 놓지 않는 것이라고는 하지만 나는 그 들의 미래도 그리 밝지만도 않으리라는 생각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그러나 때로는 어쩔 수 없는 불행이 닥쳐도 때로는 자기 잘못으로 그 댓가가 냉혹하여도 인생을 그렇게 흘려가고  우리는 결코 삶을 포기할 수 없음을 생각한다.

 

(2018.11.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