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래 (천명관)
천명관 작가는 2003년 ‘프랭크와 나’로 문학동네신인상으로 문단에 등단하여 2004년 이 작품 ‘고래’로 동네문학소설상을 받았다. 영화로도 만들어진 ‘고령화가족’의 작가이기도 하다.
이 작품은 굉장히 독특하다. 마치 티란티노감독의 B급 감성을 지닌 영화를 보는 듯한 느낌이다. 화자가 중간중간 계속 독자에게 말을 걸며 주인공의 상황이나 배경 등을 설명한다. 상황을 묘사하는 방식으로 이야기를 끌어가거나, 주인공의 심리를 깊이 파고드는 요즘 작품들과 달리 마치 판소리나 변사의 설명이 곁들여진 무성영화를 보는 것 같다.
작품의 형태 뿐만 아니라 내용도 특이하다.
일제시대부터 시작하여 박정희 대통령 시절의 ‘평대’라는 가상의 산골 동네를 배경으로 한다.
온갖 굳을 일을 해가며 돈을 모은 노파와 그 노파의 돈을 우연히 발견하여 큰 사업을 벌이는 금복, 그리고 금복의 딸 춘희가 주인공이다. 노파는 어느 누구하나 여자로 봐 주지 않는 박색이며, 금복은 아주 예쁘지는 않으나 왠지 남자를 홀리게 하는 한편 감각적인 사업가 기질이 있다. 준희는 100kg이 넘는 체구에 벙어리지만 아주 섬세한 감각을 가지고 있다.
세 명을 중심으로 마치 영화 ‘빅피쉬’처럼 다소 괴이하고 현실적이지 않은 인물과의 이야기들이 펼쳐진다. 서커스 출신의 쌍둥이 자매와 코키리(빅피쉬에는 샴쌍둥이와 거인이 나온다), 게이샤를 사랑한 야쿠자 출신 칼잡이, 꿀벌을 마음대로 다루는 노파의 딸도 나온다. 괴력을 지닌 춘희의 아빠가 죽은 지 한참 후에 춘희가 태어나는 등 논리적으로 맞지 않는 부분이 많다.(이는 작가의 오류가 아니라 의도인 듯하다.)
잠깐 스쳐지나가는 듯한 인물이 나중에는 모두 세 주인공과 어떤 사연으로든 얽히게 된다. 3명을 포함한 주변 인물들은 어떤 불행을 향해 가는 것 같은 불안감을 계속 안고 있다. ’빅피쉬’가 희망와 아름다움을 이야기한다면 이 소설은 다소 어둡고 불길하다.
등장인물과 이야기가 다양한 만큼 꽤 두꺼운 분량이지만 금방 읽힌다. 가끔 과거와 현재가 오가기는 하지만 그렇게 복잡하지도 않다. 중간에 작가가 설명을 잘 해주기 때문이다. 내용과 형식 모두 독특하면서도 재밌는 소설이다. 재밌기는 한데, 어떤 메시지를 주고자 한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다양한 이야기의 종합선물세트인지 그 안에 어떤 보석이 숨어있는지는 각자가 판단해야 한다.
(2024.0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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