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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주토끼 (정보라)

by 당근영근 2023. 10. 25.
2022년에 부커상 최종 후보에 올라서 화제가 되었던 책입니다. 저주라는 단어에서 느껴지듯이 ‘저주토끼’를 비롯한 열 개의 괴담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괴담, 기담 어떤 단어를 써야할 지 조금 망설였습니다.(요즘 뉴스에 괴담이란 단어가 많이 나오고, 기담은 예전에 봤던 영화 생각이 나고…) 둘다 이상한 이야기라는 의미를 담고 있지만, 기담은 신기하고, 괴담은 무섭다는 느낌이 강해서 괴담이라고 했습니다. 이 중 한 편은 인공지능 로봇이 나오는 SF같기도 하지만 내용이 기괴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저주받은 토끼전등으로 영문도 모르게 전 집안이 파멸한다든가, 피임약을 잘못 복용했는데 임신이 된다든가, 변기로 흘러간 본인의 배설물이나 머리카락 등으로 만들어진 이상한 존재와 대화하는 등 마치 일본 ‘이토 준지’의 만화를 보는 듯 한 느낌도 들었습니다.(이토 준지는 기괴한 만화로 유명한 일본만화가이며, 최근 넷플릭스에 ‘매니악’이라는 제목으로 애니메이션 시리즈가 방영되고 있습니다. 이 소설은 그보다는 덜 무섭고, 덜 괴기스럽긴 합니다)
그런데 이런 기괴한 이야기의 배경은 군사정권 시절 값싼 소주로 인하여 망하게 된 전통주 제조자, 겨우 어렵게 건물을 장만한 집주인과 세입자의 갈등, 낙태와 관련된 이야기 등 우리 현실 문제가 있습니다. 작가가 모든 이야기를 현실적 비판을 고려하여 쓴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이야기는 이야기 자체로써 풀어나가야 하는 것이 있으니깐요. 그렇지만, 그냥 무서운 이야기일 뿐이라고 하기엔 뭔가 찜찜하고 생각하게 만듭니다. 소설에서 내가 느끼는 불편함은 이게 나와 전혀 상관없는 이야기가 아니라 마주치기 싫은 현실이 있기 때문이겠죠.
하지만, 불편하더라도 끝까지 한번 읽어 내면 해결되지는 않아도 뭔가 복잡한 동굴 속을 지나온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별 생각을 하지 않더라도, 그냥 신기한 이야기를 상상하게 만드는 책이라 생각하고 한번 읽어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단편이라 순서에 관계없이 짧게 짧게 읽어갈 수 있어 읽기에 부담도 없습니다.
 
(2023.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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