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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무라카미 하루키)

by 당근영근 2023. 9. 19.
매직 리얼리즘
현실과 비현실이 섞여 있는 이야기를 매직 리얼리즘이라고 하는데, 가르시아 마르케스(1982년 노벨문학상 수상자, 콜롬비아)가 대표적인 작가이다. 이 소설 안에 가르시아의 작품 한 구절을 가지고 주인공이 얘기를 나누는 장면이 나온다.
무라카미 작품의 주인공은 대부분 본인과 그와 연관된 인물들만이 인식할 수 있는 이상한 세상과 연결된다. 매직 리얼리즘의 엄격한 정의와 일치하는지 모르겠지만, 비슷한 느낌이 아닐까 한다. 본인도 그래서 이런 내용을 소설 속에 넣은 것이 아닐까?
이번 작품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에서도 ‘나’는 청소년 시절에 여자친구와 같이 만들어 낸 상상 속의 도시에 들어가게 된다. 그 도시는 시간도 명확하지 않고(바늘이 없는 시계탑이 유일한 시계다), 뭔가 이상한 벽으로 둘러쌓여 문지기를 제외하고는 아무도 들어가고 나올 수 없다. 또한 도시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자기 그림자를 버려야 한다.
1980년 문예지에 발표한 중편소설을 40여년 만에 장편으로 다시 쓴 소설이라고 한다. 무라카미 작품 중 단편들도 여러 편 읽어봤지만, 그렇게 와 닿는 작품은 별로 없었다. 무라카미 소설은 디테일한 묘사와 이야기를 하나하나 단계적으로 궁금증을 자아내게 하는 장편이 좋다. 언제나 이상한 그 세상과 주인공이 어떻게 될지 궁금하게 만든다.
이번 작품은 이야기 구조도 비교적 단순하고 등장인물도 몇 명 되지 않지만, 760페이지가 넘는 분량이 지루하지 않다. 무라카미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어쩔 수 없이 이 책을 집어들어야 할 듯 하다.
 
(2023년 9월 16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