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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ATH 죽음이란 무엇인가(셸리 케이건)

by 당근영근 2024. 1. 18.

DEATH 죽음이란 무엇인가(셸리 케이건)

2014년 올해 읽은 첫 책이라 조금 무거운 주제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지만, 많은 사람들이 두려워 하는 죽음에 대한 정의와 그에 대한 고찰은 누구나 진지하게 생각해 봐야 하는 주제가 아닌가 한다.

난 어떤 종교도 믿지 않고, 죽음 이후에는 아무 것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이 책에서 말하는 물리주의와 거의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

사후세계나 영생을 믿지 않기에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가진 나는 사랑하는 사람들과 이별을 슬퍼하고, 영원히 존재하지 않을 내 자신의 비존재성를 두려워하면 맞이하게 되는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죽음의 순간보다는 내가 인식하지 못하는 순간에 죽음을 맞이하거나(예를 들면, 자는 동안 또는 갑작스러운 사고 등으로 죽음이라는 것을 인식하지 못하도록 죽는 것), 삶이 고통스러워 오히려 죽음을 원하게 되는 상황이 낫다는 생각을 한 적이 많다.
영화에서처럼 사랑하는 사람들에 둘려 쌓여서 죽음의 이별을 슬퍼하는 것은 아직은 그 죽음을 감당할 자신이 없는 나에게는 너무나 무섭고 두려운 순간으로 느껴진다.

예전에 교통사고를 당한 적이 있었다. 도로를 건너다가 빠른 속도로 달려오는 차와 정면으로 부딪혀 이를 목격한 사람은 그 자리에서 내가 즉사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큰 사고였다. 그러나, 다행히 난 다리를 조금 다친 것 이외에는 멀쩡하게 살아났다.
그 당시 난 어느 순간 정신이 들어 깨어나보니 병원 응급실이였고 나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전혀 기억이 없었다. 친구들 이야기를 듣고서야 겨우 상황을 알았다. 그 때, 만약 내가 그 사고로 죽었다면, 난 아무 두려움도 없이 그냥 이렇게 사라지는 것이구나, 아! 죽음이란 그냥 이런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에서 나오는 비존재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우리에게 나쁠 것이 될 수 없다는 이야기가 어렴풋이 생각나는 대목이기도 하다.

그 사고 이후로 20년이 지났다. 그리고, 삶과 죽음에 대한 나의 생각은 앞에서 이야기한 갑작스러운 죽음보다는 내가 스스로 죽음을 준비하고 받아들일 수 있도록 삶을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조금씩 깨달아가고 있다.

이 책에는 죽음에 대한 여러 가지 관점과 주제를 철학적 관점에서 이야기 하고 있다. 혹시 읽어보지 못하신 분들은 직접 읽어보시길 권한다.
이 책에서 제일 생각나는 한 구절로 짧은 글을 맺고자 한다


"내가 생각하는 최고의 삶이란 자신이 '원하는 만큼' 충분히 오래 사는 삶이다."

(2014.01.18)

요즘 재미있게 보는 TV 프로그램 중에 "별에서 온 그대"라는 드라마가 있다.
조선시대에 지구에 도착한 외계인이 어떤 이유로 남겨져 400년 동안 신분을 숨기면서 지구인들과 함께 살다가 연애하는 드라마다.(한국 드라마는 대부분 어떤 설정 속에서도 결국은 연애를 하게 된다. 이 얼마나 사랑이 충만한 사람들인가?)

영국의 장기 드라마인 닥터 후에서도 주인공은 900년 이상 신체를 바꾸어 가며 시간여행을 한다.
현재부터 우주가 끝나는 시간까지 존재하는 어떤 존재도 나온다(처음엔 인간이였지만, 나중에는 큰 머리만 존재하는…)


비슷한 예로 드라큐라 같이 영생을 누리는 존재는 이야기 속에 많이 존재한다.
아마도 외계인이나 특수한 존재를 통해서 오래 살고 싶어하는 인간의 희망을 투영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DEATH"라는 책을 보면 저자인 셸리 케이건은 900살을 사는 존재에 대해서 이야기 하는 부분이 나온다. 그런데, 그 존재가 시간이 지남에 따라 현재 나의 생각, 나의 기억, 나의 욕망 등이 모든 것을 변화하고 현재의 나를 기억하지 못하고 전혀 다른 존재가 된다면, 그것이 지금 나란 존재와 무슨 의미가 있느냐고 묻는다. 비슷한 이야기로, 환생을 한다고 했을 때 지금의 나를 기억하지 못하는 다음 생의 나란 존재가 지금의 나에게는 아무런 중요성이 없다는 말이다. 마치 내가 나의 전생에 대하여 아무런 기억도 의미도 없듯이 말이다.

그리고, 영생이란 것은 결국 인간에게 지루함과 고독을 줄 수 밖에 없기 때문에 영생이 축복이 될 수 없다고 얘기한다.
100년과 900년의 수명 중에 어떤 것을 선택하고 싶은가? 물론 대부분 900년일 것이다.
그럼 900년과 10,000년은? 10,000년과 50,000년은? 영생이 축복이 아니라면 어느 순간까지가 적절한 수명인가?
알 수가 없다. 그래서 케이건은 "자신이 원하는 만큼 충분히 오래 사는 삶"이라는 말을 한다. 내가 원하는 만큼.
그것은 100년 일수도, 10,000년일 수도 있다.

약간 관점을 바꾸어 생각해보자. 하루살이는 불행한가? 10년 정도 사는 동물(어떤 동물인지는 몰라도)은 불행한가?
물론 인간과 동물을 같은 선상에서 비교하자는 것은 아니지만, 인간보다 짧은 생을 살아간다고 해서 불행한 삶인가?

다시 인간의 관점으로 돌아오면 인간은 현재로써는 10,000년을 살아갈 수 없다. 기껏해야 100년 내외인 것이다.
영생이라는 것이 불가능하고, 삶의 해답이 아니라면 결국 나는 가능한 기간 속에서 원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만이 답이라는 결론이 나온다. 물론 어떤 삶이 원하는 삶이냐는 것은 각자가 또 다시 고민을 해야 하는 부분이다.

지난 번에 언급한 "DEATH" 책의 문구를 또다시 한번 이야기하고 이 글도 끝내본다.

"내가 생각하는 최고의 삶이란 자신이 '원하는 만큼' 충분히 오래 사는 삶이다."

(2014.01.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