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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민주주는 무너지는가 (스티븐 레비츠키, 대니얼 지블렛)

by 당근영근 2024. 4. 20.

어떻게 민주주는 무너지는가 (스티븐 레비츠키, 대니얼 지블렛)


민주주의 몰락은 쿠데타 같은 무력 수단뿐만 아니라 독재주의자가 정권을 잡음으로써 시작된다. 보통 아웃사이더 정치인이였던 잠재적 독재주의자는 대중적 인기를 무기로 선거나 강력한 정치인과의 연합을 통해 권력을 잡는다. 기존 엘리트 집단은 인기있는 아웃사이드를 받아들여도 얼마든지 ‘제어’가능하고, 나중에 자기들이 다시 권력을 차지할 것라고 믿는다. 기존 정치인이 잠재적 독재자와 손을 잡거나 방관하는 이유는 독재자를 통제할 수 있다는 착각 또는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지기 때문이다.

이런 아웃사이더는 정당한 절차로 자격을 부여받았기 때문에 더욱 자기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정치를 이끌어 간다.
우리가 잘 아는 무솔리니(이탈리아), 히틀러(독일), 차베스(베네수엘라) 등도 이런 방식으로 정권을 잡았다.

이런 반민주적인 정치인을 걸려내는 것은 정당이다. 대중의 공포와 무지를 이용한 극단주의자들의 선동을 막기 위해서는 정당 지도부의 필터 역할이 필요한 것이다. 예를 들어 뛰어난 기업가였지만, 극단적 선동주의가로 평가받았던 포드자동차의 '헨리 포드'가 대선 출마를 시도했을 때, 정당 내부의 강한 반대로 포드는 결국 대통령의 꿈을 접었다. 물론 이런 역할은 반대로 새롭고 혁신적인 인물의 정치 진입장벽이 될 수도 있는 단점도 있다.

그럼 실제로 민주주의는 어떻게 무너지는가?
불법적이고 강압적 수단이 아니라 합법적인 범위에서 서서히 무너진다. 그 첫번째 수단으로 법원, 검찰, 정보기관, 국세청 등의 규제기관에 자기 사람을 심어놓는 것이다.
관련자를 매수하거나 말을 듣지 않으면 해임하고, 공직이나 뇌물, 사업권 등을 제공하면서 자기 편으로 만든다.
언론 또한 매수하거나 탄압하고, 기업을 압박하여 경쟁자의 후원을 차단하고, 대중적 영향도가 큰 문화계 인사에게도 다양한 방법으로 정치에 영향을 주지 않도록 한다. 선거제나 선거구 조정 등으로 통해 선거에 유리하게 만들어 놓는다. 온갖 수단을 통해 기울어진 운동장을 만들어 놓고 권력을 장기적으로 독점하는 것이다.

모든 헌법이나 제도는 완벽하지 않다. 그럼 지금까지 어떻게 민주주의를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일까? 그것은 상호 관용과 제도적 자제이라는 두 가지 관행이 있었기 때문이다.
상호 관용은 서로가 경쟁관계지만 동동한 상대방으로 인정하는 것이다. 상대방을 없애야 할 적으로 보지 않는다.
제도적 규범이라는 것은 성문화된 법에는 모두 명시적으로 되어 있지 않지만, 법적 권리를 신중하게 행사하는 태도를 말한다. 대통령의 거부권이 있다고 하더라도 무분별하게 사용하지 않는 것이다.
미국 초대 대통령 위싱턴은 법에 규정되어 있지 않아도 중임 후에 퇴임하였고, 대통령 중임은 4선을 지낸 루스벨트 이후 1951년 수퍼헌법 22조에 명시적으로 정해지기 전까지 관행적으로 지켜져 왔다. 또한 대통령의 거부권은 위헌 여지가 있는 법안에 대해서만 아주 제한적으로 사용해 왔다.

이런 규범들이 무너지면서 정당간 혐오가 심해지고, 견제와 균형 시스템도 무너지게 된다. 입법부와 사법부는 막강한 권력을 지닌 대통령(행정부)을 견제하는 감시견이 되어야 한다. 야당이 입법부와 사법부를 장악하여 예산을 죄고, 대통령을 임명권을 무조건 거부하는 투견이 되는 경우도 있고, 반대로 여당이 대통령의 탄압적이고 불법적인 행위를 묵인하는 애완견으로 전락하는 경우도 있다.

저자는 민주주의를 되살리기 위해서는 결국 이런 상호 관용과 제도적 자제를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한다. 미국은 현재 공화당은 백인 개신교, 민주당은 흑인 및 유색 이민자들로 지지자들이 구성되어 있어 이념적으로 경제적으로 상호 대립적인 요소를 가지고 있다. 상호 관용을 위해서는 각당 구성원들의 공통된 이익을 위한 제도를 추진함으로써 상호 동질감을 어느 정도 회복할 수 있다고 제안한다. 예를 들어 기본 소득과 의료보험 개선으로 보편적 복지로 경제 불평등 해소하는 것으로 공통점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한다.(우리나라는 보편적 복지 문제로 보수와 진보가 팽팽하게 대립하고 있어 우리의 정치 현실과는 다른 것 같다.)

그리고, 어느 한 쪽이 규범을 지키지 않는다고 똑같은 방식으로 대응해서는 안된다고 충고한다. 그럴 경우 결국 대립만 커지게 된다. 규범을 지켜서 국민적 지지를 받아야 만 제대로된 민주주의 복원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 책은 2016년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을 계기로 미국조차도 민주주의가 굉장히 취약함을 깨닫고 어떻게 합법적으로 민주주의가 약해질 수 있으며, 또한 최근 왜 이런 위기를 초래하였는지를 분석한 책이다. 미국과 우리나라가 선거 제도나 국민의 구성, 문화 등이 달라 조금은 다른 면도 있지만, 책을 읽는 내내 현재 우리 모습을 보고 있는 것 같았다. 아마 저자도 지금 글을 썼으면 우리 나라 사례도 일부 언급하지 않았을까 싶다.

우리 뿐만 아니라 현대 민주사회의 위기를 다시 되짚어 보게 하는 책이다. 꼭 한번 일독은 권한다.

마지막으로 포드가 대선 출마를 시도했을 때 한 상원 의원의 발언을 소개한다. “예순이 넘도록 훈련도 경험도 없는 사람이 어떻게 감히 그런 자리를 꿈꾼단 말인가? 가당치도 않다.”

우리 나라도 이런 말을 하는 사람과 지지가 있었어야 하지 않았을까?

(2024.04.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