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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우다 (현기영)

by 당근영근 2024. 8. 21.

제주도우다 (현기영)

이 소설은 한 다큐멘터리 제작자가 제주4.3민중항쟁 관련 다큐멘터리를 만들기 위해 그 부인의 할아버지를 찾아오면서 시작한다.

제주 조천리에 사는 안창세(이야기 주인공 할아버지)는 아버지가 배 해난사고 후유증으로 사망하고, 어머니와 누나와 함께 살고 있다. 해변가 마을인 조천리와 달리 중간산에 있는 외홀리에는 말을 키우는 외삼촌이 있다. 안창세는 나름 공부를 잘 하고 문학도를 꿈구는 학생이고, 누나는 해녀 물질도 하면서 외삼촌에게 말다루는 법을 배우는 당찬 여자이다.

안창세가 소학교 다니던 중 우리나라는 해방을 맞이한다. 해방 직후 새로운 희망으로 가득찼던 제주 사람들은 채 1년도 지나지 않아 미군정의 지배와 남북 분할 시도, 친일파들의 재기용에 설상가상으로 흉년까지 들어 일제시대 못지 않은 괴롭힘에 당면하게 된다.

그러던 중 1947년 3.1절 기념식 후 어린 아이가 기마경찰의 말발굽에 다치고 이에 항의하던 군중에게 총을 발사하는 사건이 일어난다. 제대로 된 사과도 없자 제주도민들은 3월 10일 총파업을 일으킨다. 하지만, 그 이후로 외부 경찰 뿐만 아니라 서북청년회까지 가세하여 더욱 탄압이 심해지자, 다음 해인 1948년 4월 3일 약 350명의 무장대가 경찰지서와 우익단체를 공격한 4.3민중항쟁이 시작되었다. 하지만, 그 이후로는 항쟁이라기 보다는 일방적인 학살이다. 변변한 무기도 없던 무장대는 살기 위해 산으로 숨어들었고, 이를 진압한다는 명분으로 군/경찰/서청은 무고한 제주 사람들을 가두고 죽음에 이루게 했다. 급기야 산중간 마을 소개까지 하며 학살과 약탈의 강도를 높인다. 당시 30만 제주인구 중 약 3만명 정도가 희생되었다고 하니 전쟁을 제외하고 우리나라 어떤 사건보다도 많은 희생자가 나지 않았을까 한다.

이런 역사적 사건들이 주인공이 살던 조천리 마을 사람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이 소설에 나오는 마을 사람들은 가상의 인물일지라도 그들이 겪은 많은 사건들은 대부분 사실을 기반으로 작성된 내용들이다. 특정 한 두명의 이야기가 중심이 되는 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개개인의 상황에 따라 겪은 다양한 일들이 나열된다. 역사책을 읽어내려가는 것보다 이 소설을 통해서 참혹했던 일제말과 해방 직후의 상황이 생생하게 느껴진다.

그 사건에서 살아 남은 사람들도 제대로된 삶을 살 수는 없었을 것이다. 안창세 할아버지는 마을 사람들과 함께 산속에 숨어 지내다가  무장대가 해산되고 대부분 마을 사람들이 죽거나 투항하던 시점에 나이가 어린 덕분에 겨우 살아남는다. 하지만, 그는 그 이후로 지금까지 자신은 살아 있는 것이 아니라 죽어 있다고 말한다. 그 오랜 세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런 마음을 가지고 살고 있고, 살다가 죽었을 것인가.

해방 직전과 남한 단독정부가 수립되던 1948년 즈음한 소위 해방정국, 그 당시 우리나라 모두가 비슷한 상황이였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이 소설은 제주도만의 상황을 제주도민의 눈으로 당시를 볼 수 있게 해준다. 아직도 친일파를 제대로 청산하지 못하고, 반공이데올로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슬픈 현실에서 꼭 한번 읽어봐야 하는 소설로 추천하고 싶다.

(2024.08.21)